30대에 접어드니 어째서인지 옛것을 뒤적거리게 된다. 그리움 혹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본능이 아닐까 싶다. 30년이라는 시간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앞으로는 더욱 빠르게 지나갈 것이라는 인생 선배의 한마디가 피부 위에서 똬리를 틀고 앉는 느낌이다. 엔진 소리와 굴러가는 바퀴에 심취한 사람들은 기억을 잠시 떠올려보자. 우리의 흘러간 시간들과 함께 심장을 뛰게 만들었던 강한 엔진과 낮고 날렵한 자태의 모델들, 포르쉐에게 엄지척!을 받은 엘란트라부터 최초로 터보차저를 올린 스쿠프, 지금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기아 엘란 그리고 엘리사라는 이름의 투스카니와 함께하거나 그 차를 보며 꿈을 키워온 청년이라면, 지금쯤 자신의 일과 사회에 치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기어 스팅어는 뜬금없이(물론, 4.9초를 꾸준히 내보내긴 했지만) 기존에 없던 새로운 모델로 등장했다. 매번 별별 일이 치고 들어오는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4.9초 실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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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등장한 스팅어는 꺼내보니 국산차 중 가장 고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시속100km/h까지 4.9초에 끊는 가속력을 가진 국산차라는 것이 실화인가 싶지만, 분명 실화다. 굳이 런치 콘트롤로 몰아붙이지 않아도 가속할 때 몸이 시트에 쑤욱 밀려 들어가는 감각도 진짜다. 피스톤 여섯개가 V형으로 배치된 3300cc GDI 엔진에 터보차저를 두 개 올렸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370마력과 52kgf.m의 힘은 절대 만만한 힘이 아니다. 약 1.8톤의 무게를 4.9초만에 시속100km/h까지 가속하는 이 힘은 엔진의 힘만큼 마구 쏟아지는 반발력을 버텨낼 프레임과 그 힘을 빠르게 나눠줄 변속기 그리고 구동력을 꽉 잡아줄 LSD와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4 같은, 말 그대로 ‘좋은’ 타이어까지 조합되어야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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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다양한 안전장비가 거들어줘야만 비로소 통제 가능한 힘이 된다. 자세보조장치들을 완전히 OFF 해버리면, 가속페달만으로도 간단하게 뒤 타이어를 제자리에서 태워버리거나 스티어링 휠을 돌리며 꼬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이 힘을 항상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자신이 원치 않은 순간에 가드레일로 돌진할 수도 있는 힘이다. 그렇기에 스팅어가 제공하는 다섯 가지 모드 중 스포츠모드에 두어도 모든 제어를 완전히 풀어두지 않는다. 이쪽이 운전자뿐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방향일 것이다.
기아차 특유의 느낌은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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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 조작 느낌만으로 브랜드를 가려내는 것이 가능할 만큼, 현대와 기아의 페달 입력 초반에 몰려있는 반응과 조작감은 이제 없다. 스팅어의 가속 페달은 누구든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을 만큼 구간이 촘촘해졌다. 이전에는 조작 값이 1부터 10까지라면 적어도 100까지는 나누어진 느낌이다. 더 이상 출발은 ‘웅!’ 주행은 ‘멍’한 느낌은 없다고 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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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페달의 느낌 또한 살짝 건든다고 초반부터 제동력이 확 들어가던 특성 또한 느끼기 어려웠다. 브렘보 4피스톤 캘리퍼가 적용된 ‘3.3터보GT’는 브레이크 페달에 힘을 주는 만큼 제동력이 일정하게 밀려온다. 이전의 기억대로 브레이크 페달을 살짝만 눌렀다가 그대로 앞차에 돌진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다. 물론, 전방 충돌방지 보조 시스템이 개입해 알아서 차를 멈춰 세우기는 할 것이지만, 부드러운 제동을 위해 발끝 신경을 곤두세워서 깃털 브레이킹을 할 필요가 없다. 일단 밟기 시작하면서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고속주행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데, 변화하는 앞뒤의 무게 배분을 느껴가며 알맞은 제동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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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기아 스팅어는 장거리를 빠르고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GT컨셉의 차량이라는 것이다. 스팅어의 휠베이스는 2,905mm로 대형차 급의 휠베이스를 가진다. 고출력 후륜구동에 쿠페를 떠올리는 외형이지만 엄연히 뒷문이 달려있고, 뒷자리는 후륜구동 플랫폼 중에서는 꽤나 넉넉한 공간을 가진다. 트렁크로 흐르는 라인도 낮고 길게 뻗으며 헤드룸의 여유가 걱정되었지만, 착석위치가 지면과 상당히 가까워 공간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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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도 여유롭다. 하지만 그보다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은 굉장히 낮은 착석 위치이다. 높은 SUV를 운전하다 보통의 세단 차량을 타게 되면 길바닥이 매우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데, 세단에서 스포츠 세단으로 갈아탔을 뿐인데도 그러한 느낌이 떠오를 정도로 낮은 위치이다. 그래서 시트를 가장 낮게 두면 창문으로는 얼굴만 살짝 보이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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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 시트는 모든 옵션이 전부 들어간 모델답게 허벅지 받침 길이와 각도까지 전부 전동으로 세밀하게 조정 할 수 있는데다, GT컨셉의 차량답게 가죽도 탄탄하고 옆구리를 버킷시트 수준으로 감싸준다. 에어쿠션에 바람을 넣어 몸에 꼭 맞게 조정하면 더욱 만족스러울 테지만, 통풍시트의 바람도 올려주면 이거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서킷에서 모든 집중력을 소진하며 타이어 가루를 날려도 등짝만은 뽀송뽀송 할 것이다.
스팅어가 내세우는 감성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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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팅어는 빠른 주제에 꽉 조여진 감각으로 기존 국산차를 간단히 뛰어넘는 세련된 주행감을 느낄 수 있다. 요즘의 차량이 그렇듯 터보렉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에코모드에서는 좀처럼 부스트 압력이 올라가는 것을 보기 쉽지 않으며, 변속기는 빠르게 탑기어를 향해 변속을 이어나간다. 스포츠모드에선 귀에 엔진소리가 울려 펴지며, 가속페달 반응도 좀 더 민감해진다. 변속기도 약간의 충격을 만들어내며 내가 지금 변속을 하고 있음을 알린다. 하지만, 스포츠모드에서 들리는 엔진소리는 사람이 만들어낸 전자음이다. 실제 엔진소리는 매우 조용하다. NVH 설계가 훌륭한 탓인지 터보 엔진이 맞나 싶을 정도로 특유의 터보차저 음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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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로 들려주는 엔진소리는 어색하지 않을 만치 매우 잘 조율해뒀다. 스팅어에 대한 아쉬움보다도 이제 이런 시대가 되었나 싶은 아쉬움이 더 크다. 머플러로 터져 나오는 배기음도 분명 많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할 것이지만, 각 메이커별로 지닌 독특한 엔진음을 온전히 귀로 즐겨오던 감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멀어져 가고 있다는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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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스팅어의 등장에 설렐 우리는 그러한 날것, 그릉거리며 날카롭게 회전하는 기계음으로 고막을 튕겨줄 감성을 원했는지 모른다. 날로 강화되는 환경과 소음규제에 맞춰 이제는 독립된 공간인 차 실내에서만 즐겨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세월과 함께 들어버린 나이의 흔적에 맞게 타인을 배려할 줄 알면서도 이전 날들의 가슴 뛰던 시절을 마음속으로 떠올려 꿈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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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마주치는 스팅어의 CF와 함께 흘러나오는 노래는 에디뜨 삐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다. 많은 사람들 귀에 익은 멜로디로 시작하며, 주옥같은 가사만을 녹아내었다. ‘아니요, 전혀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좋을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마찬가지예요.’ 우리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이 지나가다 마지막은 ‘나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와 함께 스팅어의 슬로건인 Live your Dream이 이어져 나온다. 스팅어가 의도한대로 마음 한구석에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감정이 느껴졌다면, 일과 삶에 치이던 여러분의 가슴도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의도된 홍보계획이어도 상관없다. 분명 좋은 말이니까 말이다.
글
강지용 기자 jiyong@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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